경주 아트선재미술관 제 2전시실에서 9월 23일부터 11월 26일까지 정광호 개인전이 열린다. 가는 철사로 엮은, 속이 훤히 비춰지는 형태의 조각 작품을 통해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문제시해온 작가 정광호는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가 비-조각적 조각이라 칭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보여줄 예정이다. 언뜻 조각도 그렇다고 회화도 아닌 것만 같은 정광호의 비-조각적 조각을 통해서 새로운 형태로 확장하고 있는 조각의 여러 의미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1. 조각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들_ 비-조각적 조각 잎맥을 따라 펼쳐진 나뭇잎, 깨진 금을 따라 빚어진 항아리, 문자들이 연결되어 이루어진 상자나 고리모양이 최근의 정광호의 조각세계를 이루고 있다. 언뜻 보기에 조각도 그렇다고 회화도 아닌 것만 같은 다만 하나의 공간을 점하고 있을 뿐인 이런 작품들을 작가는 비-조각적 조각이라 명명한다. 정광호의 작품은 이차원의 표면을 따라 선을 그려간다는 면에서는 회화의 확장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선들이 공간 속에서 움직인다는 면에서는 조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속이 비었을 뿐 아니라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안과 밖이 뚜렷이 구별되지 않은 특이한 조각인 것이다. 이러한 조각은 부정을 통한 조각의 존재방식에 대한 성찰이며 이러한 부정은 단순한 부정, 곧 조각이 아니라기 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조각, 따라서 조각을 보다 넓은 지평 위에서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정광호의 비-조각적 조각은 단순한 물체(일상사물들 혹은 회화)와 기존 조각의 틈새에 자리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조각의 존재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조각, 곧 회화나 조각 그 어느 것도 아니면서 그 모두이기도 한 또 다른 종류의 조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2. 공간 속에 새롭게 자리잡기 가는 철사로 엮어진 정광호 조각의 선은 캔버스 표면이라는 불투명한 가상의 공간에 그려지는 대신 투명한 실제 공간 속으로 투입된다. 작가의 말처럼 물성(物性)이 부각되는 것이다. 이러한 물성은 시각적인 흔적, 시각적인 질료성을 획득한다. 회화냐 조각이냐라는 물음 대신 그것이 망막 상에 비춰지는 시각적인 물성을 갖고 있음을 다시 확인한다는 면에서 그의 조각은 가시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시성이 정광호가 우리에게 거는 미술의 존재이유 같은 것들이다. 그것들은 벽과 주변의 공간, 광선, 그림자 등과 동등하게 실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살아있는 시각적인 경험을 수정한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면 이런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만들고자 한 것은 사물도 아니고 이미지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물과 이미지를 떠나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그것을 말할 수 있다면 사물과 이미지 사이로 좁혀 들어가는 것이라고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규정할지를 고민해 왔다. 작품이란 그의 말대로라면 작품 이전에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에 규율을 주는 것이다. 사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 어울리는 것이고 자리를 점하는 것이다. 그가 가는 철사로 나뭇잎을 만들기 시작한 근거는 이 두 가지 조건을 하나의 시각장 속에 집어넣을 수 있는가를 실험하기 위해서였다.
전시개요
경주 아트선재미술관 제 2전시실에서 9월 23일부터 11월 26일까지 정광호 개인전이 열린다. 가는 철사로 엮은, 속이 훤히 비춰지는 형태의 조각 작품을 통해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문제시해온 작가 정광호는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가 비-조각적 조각이라 칭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보여줄 예정이다. 언뜻 조각도 그렇다고 회화도 아닌 것만 같은 정광호의 비-조각적 조각을 통해서 새로운 형태로 확장하고 있는 조각의 여러 의미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1. 조각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들_ 비-조각적 조각 잎맥을 따라 펼쳐진 나뭇잎, 깨진 금을 따라 빚어진 항아리, 문자들이 연결되어 이루어진 상자나 고리모양이 최근의 정광호의 조각세계를 이루고 있다. 언뜻 보기에 조각도 그렇다고 회화도 아닌 것만 같은 다만 하나의 공간을 점하고 있을 뿐인 이런 작품들을 작가는 비-조각적 조각이라 명명한다. 정광호의 작품은 이차원의 표면을 따라 선을 그려간다는 면에서는 회화의 확장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선들이 공간 속에서 움직인다는 면에서는 조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속이 비었을 뿐 아니라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안과 밖이 뚜렷이 구별되지 않은 특이한 조각인 것이다. 이러한 조각은 부정을 통한 조각의 존재방식에 대한 성찰이며 이러한 부정은 단순한 부정, 곧 조각이 아니라기 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조각, 따라서 조각을 보다 넓은 지평 위에서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정광호의 비-조각적 조각은 단순한 물체(일상사물들 혹은 회화)와 기존 조각의 틈새에 자리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조각의 존재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조각, 곧 회화나 조각 그 어느 것도 아니면서 그 모두이기도 한 또 다른 종류의 조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2. 공간 속에 새롭게 자리잡기 가는 철사로 엮어진 정광호 조각의 선은 캔버스 표면이라는 불투명한 가상의 공간에 그려지는 대신 투명한 실제 공간 속으로 투입된다. 작가의 말처럼 물성(物性)이 부각되는 것이다. 이러한 물성은 시각적인 흔적, 시각적인 질료성을 획득한다. 회화냐 조각이냐라는 물음 대신 그것이 망막 상에 비춰지는 시각적인 물성을 갖고 있음을 다시 확인한다는 면에서 그의 조각은 가시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시성이 정광호가 우리에게 거는 미술의 존재이유 같은 것들이다. 그것들은 벽과 주변의 공간, 광선, 그림자 등과 동등하게 실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살아있는 시각적인 경험을 수정한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면 이런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만들고자 한 것은 사물도 아니고 이미지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물과 이미지를 떠나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그것을 말할 수 있다면 사물과 이미지 사이로 좁혀 들어가는 것이라고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규정할지를 고민해 왔다. 작품이란 그의 말대로라면 작품 이전에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에 규율을 주는 것이다. 사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 어울리는 것이고 자리를 점하는 것이다. 그가 가는 철사로 나뭇잎을 만들기 시작한 근거는 이 두 가지 조건을 하나의 시각장 속에 집어넣을 수 있는가를 실험하기 위해서였다.